이제는 반소매 옷이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되었습니다.
햇살은 제법 뜨겁고, 길가 나무들도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무성해졌습니다.
하지만 불과 몇 주 전만 해도, 땅 가까이에 피어 있던 작은 꽃들 사이에서 계절의 문턱을 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, 작고 수줍은 얼굴로 봄의 첫 인사를 건넸던 꽃이 있습니다. 바로 앵초(Primula)입니다. 가장 먼저 피지만, 금세 잊히는 꽃 앵초는 이름처럼 ‘봄을 알리는 꽃’입니다. 라틴어 ‘Primula’는 ‘첫 번째’를 뜻하는 primus에서 왔으며, 실제로 이른 봄 3월부터 모습을 드러냅니다. 하지만 계절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고, 꽃도 이내 자취를 감춥니다. 지금처럼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 계절에는 그 존재조차 잊기 쉽습니다. 그러나 앵초는 잊히기 아까운 꽃입니다. 처음 그 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은 지금도 마음 한 켠에 조용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.
앵초는 어떤 꽃일까요?
앵초는 앵초과(Primulaceae)의 숙근초(여러해살이 식물)로, 작고 다정한 느낌의 꽃잎을 여러 개 모아 핍니다. 한 송이보다는 무리지어 피어나는 경우가 많아 작은 공간에서도 봄의 기운을 한껏 전해줍니다. 색상은 연분홍, 하양, 보라, 노랑 등 다양하며, 부드럽고 맑은 인상이 특징입니다. 보통 키는 10~30cm 내외이며, 화분, 정원, 화단 등 어디서든 잘 어울리는 식물입니다.
대표적인 앵초 종류
- 말라코이데스(Primula malacoides) 겨울이 끝나갈 무렵부터 개화하는 대표적인 원예종입니다.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앵초입니다.
- 옥스립(Primula elatior) 연노란 꽃이 피며, 유럽 야생종으로 자연스러운 정원 연출에 좋습니다.
- 줄리애나 앵초(Primula × juliae) 색상이 화려하고 내한성이 좋아 가드닝 초보자에게도 인기 있습니다.
- 설앵초(Primula modesta var. fauriae)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품종으로, 5~6월 사이에 개화합니다. 설악산, 지리산 등의 고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.
앵초는 어디에 어울릴까요?
지금은 비록 앵초가 피지 않는 계절이지만, 앵초는 정원 설계나 화단 꾸미기를 미리 고민할 때 꼭 언급됩니다. 왜냐하면 다음 봄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앵초는 빠질 수 없는 꽃이기 때문입니다. 작은 텃밭이나 마당 앞에 소박한 꽃길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이른 봄에 ‘꽃이 피었다’는 확신을 주고 싶을 때 아이들과 함께 ‘가장 먼저 피는 꽃 찾기’를 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앵초는 꼭 기억해야 할 존재입니다.
한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서
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계절은 초여름의 초입입니다. 수국은 막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고, 장미는 성급하게 활짝 피었습니다. 앵초는 이 계절 어디에도 없습니다. 하지만 저는 이맘때가 되면 늘 봄의 기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. 가장 먼저 피었기에, 가장 먼저 사라지는 꽃. 앵초는 짧지만 선명한 존재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. 내년 봄이 오면, 저는 다시 그 꽃을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.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겠지요. “아, 봄이 왔구나. 앵초가 알려주었구나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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